(1) 포드 부품 공급사에서 탄생한 완성차 메이커, 형제의 이름을 걸다
닷지(Dodge)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1900년대 초반, 형제인 존(John Francis Dodge)과 호레이쇼(Horace Elgin Dodge)는 원래 포드(Ford)의 주요 부품 공급사로 시작했다. 대규모로 생산되는 포드 모델 T에 엔진·섀시 부품 등을 납품하면서 사업 기반을 다졌으나, 둘은 곧 “우리가 직접 완성차를 만들어도 경쟁력 있겠다”는 결심에 이른다.
결국 1914년, ‘닷지 브라더스(Dodge Brothers)’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독자 모델을 시장에 내놓았다. 견고한 철제 차체와 비교적 강력한 엔진 성능을 앞세워, 초창기부터 미국 소비자들에게 “튼튼하고 믿을 만한 차”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1920년대 중반에는 미국 내 판매량 2~3위를 기록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설립자 형제는 안타깝게도 1920년에 둘 다 별세했고, 회사는 수차례 경영권이 넘어간 끝에 1928년 크라이슬러(Chrysler)에 인수되어 크라이슬러 그룹의 중저가 브랜드로 편입된다. 이후 닷지는 픽업트럭·승용차·상용차 등 광범위한 세그먼트에 진출하며, “강력함과 실용성”을 결합한 미국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2) 머슬카 열풍과 차저·챌린저, 그리고 픽업트럭 램
1960~70년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배기량이 곧 힘”이라는 머슬카(Muscle Car) 전성기가 찾아오자, 닷지는 대배기량 V8 엔진과 공격적인 디자인을 결합한 고성능 쿠페·세단을 잇달아 선보였다. 그 대표 주자로 **차저(Charger)**와 **챌린저(Challenger)**가 있다.
- 차저(Charger): 1966년 첫선을 보인 차저는 패스트백 스타일의 쿠페 차체, 범퍼 일체형 그릴, 그리고 383·440·426 헴리(Hemi) 같은 대배기량 엔진 옵션으로 당시 젊은층을 열광시켰다. 나스카(NASCAR) 무대에서도 활약하며, “고속 주행에도 안정감이 뛰어난 머슬카”라는 명성을 얻었다. 1969년형 차저는 영화 ‘더 듀크 오브 해저드(The Dukes of Hazzard)’의 ‘제너럴 리(General Lee)’로 유명해져, 대중문화 전반에 닷지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챌린저(Challenger): 1970년 등장한 챌린저는 플리머스 쿠다(Cuda)와 플랫폼을 공유했지만, 닷지 특유의 공격적 프론트 마스크와 폭넓은 엔진 라인업(스몰블록에서 헴리 426까지)을 통해 “최고 출력에 갈증을 느끼는 머슬카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오일 쇼크와 배출가스 규제로 머슬카 황금기가 시들해지면서 한동안 단종되었으나, 2008년에 레트로 디자인으로 부활해 다시금 “아메리칸 머슬카” 붐을 이끄는 핵심이 된다.
한편, 픽업트럭 시장에서도 닷지는 미국에서 전통 강자 중 하나다. 과거 “닷지 램(Dodge Ram)”으로 불렸지만, 2009년 이후 램(Ram)이 독립 브랜드화됨에 따라 현재는 “램 1500, 2500, 3500” 등 풀사이즈 픽업 시리즈로 파생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닷지 램”이라고 부를 만큼, “닥치고 강인한” 미국식 트럭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켰다. 램 시리즈는 포드 F 시리즈, 쉐보레 실버라도(Chevrolet Silverado)와 함께 미국 픽업트럭 시장의 ‘빅 3’로 꼽히며, 건설 현장·농장·레저 활동 등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3) 크라이슬러 그룹 산하에서 전동화로 가는 닷지의 미래 전략
닷지는 1998년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 모회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 2007년 분리, 2009년 피아트(Fiat)에 인수, 2021년 스텔란티스(Stellantis) 탄생에 이르기까지, 모회사 구조가 수시로 바뀌는 굴곡진 역사를 지냈다. 그럼에도 고성능 머슬카와 픽업트럭이라는 뚜렷한 정체성 덕분에, 미국 시장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유지해 왔다. 다만 최근 들어 환경 규제와 전동화(Electrification)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배기량이 곧 힘”이라는 전통적 지향점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도전이 일고 있다.
스텔란티스 체제에서는 지프(Jeep), 램(Ram), 크라이슬러(Chrysler) 등 미국 브랜드와 푸조, 시트로앵, 오펠, 피아트 등의 유럽·이탈리아 브랜드가 한 지붕 아래 모이게 되었다. 이렇게 광범위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공유하면, 전동화 플랫폼과 자율주행·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합 개발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닷지는 이 체제에서 “고성능·머슬카·픽업트럭”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계속 남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전동화 시대를 고려하면 하이브리드·전기 파워트레인을 어떻게 적용할지가 과제다.
이미 닷지는 콘셉트 모델을 통해 전기 머슬카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전동화 모델에 대한 구체적 플랜은 “차저·챌린저도 머지않아 전기 파워트레인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식의 암시를 꾸준히 해왔고, “정통 V8 배기음과 전기 모터의 무소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 엔진음 시스템, 변속 감각 모사 기술 등을 연구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미국 머슬카 팬들의 반발을 달래는 동시에, 환경 규제와 연비 기준을 만족해야 하는 복합적 미션이 닷지 앞에 놓여 있다.
또한 닷지는 “스텔란티스 중에서도 젊은 층과 퍼포먼스 마니아를 겨냥한 공격적 이미지”를 대표하기에, 향후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더라도 완전 자동운전 대신 “운전자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모드”를 제공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기반 전기 퍼포먼스카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닷지가 V8 대신 전기 모터로 어떤 ‘아메리칸 파워’를 구현할지가 포인트다. 소비자들은 “0-100km/h 가속을 2초대에 끊는 전기 머슬카”에도 관심이 많지만, 동시에 “근육질 사운드와 수동 컨트롤 감각”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많아, 그 줄타기를 어떻게 할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픽업트럭 부문(람 브랜드)은 이미 F-150 라이트닝 등 전기 픽업 경쟁 모델이 나오면서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닷지 자체 픽업 라인업이 램과 분리된 만큼 닷지는 픽업이 아닌 머슬카·SUV·크로스오버 쪽에서 어떤 전동화 모델을 전개할지도 궁금하다. 스텔란티스가 개발 중인 STLA 프레임, STLA 라지(Large) 등 전동화 플랫폼을 통해, “전기 차저(E-Charger?)”나 “전기 챌린저(E-Challenger?)”가 나올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정리하자면, 닷지는 1900년대 초반 포드 부품 공급사에서 출발해 1914년 독자 메이커로 성장, 1920년대에는 미국 판매량 2~3위권까지 도달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이후 크라이슬러에 인수된 뒤로는 “머슬카 차저·챌린저”와 “픽업트럭 램”을 양대 축으로 운영하며, “배기량이 곧 힘”이라는 미국적 가치관을 전 세계에 전파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배출가스 규제 등으로 한차례 위축되었지만, 2000년대 들어 다시금 레트로 머슬카 붐이 일면서 차저·챌린저가 현대적으로 부활해 명맥을 이어갔다.
현재는 전동화·자율주행이라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V8·V10 엔진 의존도를 줄이고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 파워트레인으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수십 년간 이어온 “아메리칸 머슬” 이미지와 환경 규제, 두 명제 사이에서 닷지가 어떤 타협점을 찾을지가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동시에 “강인하고 거친” 디자인 언어와 마초적 마케팅으로 청년층·퍼포먼스 애호가에게 어필하는 닷지가, 전기 시대에도 이 감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미래를 내다봤을 때, 닷지는 스텔란티스 산하에서 여전히 머슬카 시장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 같은 전기 퍼포먼스카와 경쟁하려면, “전통 근육질 사운드”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이 불가피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닷지 고유의 아메리칸 강인함을 어떻게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머스탱 마하-E 같은 경쟁 모델이 이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닷지도 머슬카 전동화 프로젝트를 빨리 가속화해야 한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결국, 닷지는 “포드나 쉐보레와 다른, 대담하고 파워풀한 미국 차”라는 브랜드 유산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전기 머슬카 시대로 연장할 것인가?”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 차저·챌린저가 들려주던 우렁찬 배기음 대신, 모터의 즉각적인 토크와 디지털 사운드가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점은 레거시 팬들에게는 아쉬울 테지만,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함은 자명하다.
닷지의 슬로건 “Domestic. Not Domesticated.”가 말해주듯, “투박하지만 강한 미국차”라는 메시지를 전동화 환경에서 어떻게 재탄생시킬지, 향후 몇 년간 스텔란티스 내 닷지의 행보가 흥미로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