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 안전 철학의 상징, 볼보(Volvo)의 역사와 미래

볼보

(1) 혹독한 북유럽 기후 속에서 탄생한 안전 제일주의

볼보(Volvo)는 스웨덴 고텐버그(Göteborg)에서 1927년 아사 가브리엘손(Assar Gabrielsson)과 구스타프 라르손(Gustaf Larson)이 세운 자동차 회사로, 혹독한 북유럽의 겨울 기후와 거친 도로 환경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안전하고 견고한 차”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명(Volvo)은 라틴어 “I roll”(나는 굴러간다)에서 유래된 단어로, 원래는 베어링(볼베어링) 제조 업체 SKF의 자회사로서 탄생했다. 그러나 아사와 구스타프가 ‘스웨덴 사람들에게 적합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독립 창업을 결정했고, 1927년 4월 14일 첫 모델 ‘ÖV4(일명 야콥)’를 내놓았다. 이 차량은 당시 유럽 내 다양한 신생 자동차들 사이에서, 단단하고 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볼보가 다른 메이커와 차별화된 점 중 하나는 ‘안전’과 ‘인간 중심’이라는 철학을 아주 이른 시기부터 강조했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겨울이 길고 도로가 얼기 쉬워, 서스펜션과 차체 구조가 튼튼해야 하고, 내면도 혹독한 충돌 상황을 대비해 설계해야 한다는 필요가 컸다. 볼보는 이런 배경 속에서 “사고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는 원칙을 세웠고, 이후 수많은 안전 관련 특허와 발명품을 내놓게 된다.

(2) 안전 벨트와 충돌 연구, 그리고 240·740 왜건의 인기

볼보가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59년, 엔지니어 닐스 볼린(Nils Bohlin)이 **3점식 안전 벨트(Three-Point Seatbelt)**를 발명한 사건이었다. 기존의 2점식 벨트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인체를 안정적으로 지지해주는 3점식 벨트는, 운전자와 탑승자를 충돌 시 치명적 부상에서 구해주는 획기적 장치였다. 볼보는 이 기술의 특허를 공개해,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동차 안전 문화를 전체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에도 볼보는 여러 안전 실험과 충돌 연구를 진행해, 차체가 충돌 시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된 크럼플존(Crumple Zone), 강화된 캐빈 구조, 사이드 임팩트 보호(SIPS) 등을 잇달아 도입했다. 1970년 볼보는 자동차 안전 연구소(Volvo Safety Centre)를 설립해 실제 차량 충돌 실험과 인체 모형 테스트를 체계적으로 실시했고, 이를 통해 모은 데이터를 기술 개발에 반영해 왔다.

1970~80년대 볼보 240·740 시리즈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각진 디자인”과 “가족용 왜건”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충돌 안전성과 실용성, 그리고 긴 차체 수명 덕분에 “한 번 사면 20년은 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신뢰가 컸다. 240·740 왜건형 모델은 많은 북유럽 가정의 패밀리카로 자리 잡았고, 해외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안전차”라는 평가를 받으며 소위 ‘박스형 볼보’ 전성기를 이뤘다.

(3) 중국 지리자동차 인수와 전동화, 그리고 지속 가능성

1990년대 후반부터 볼보는 승용차 부문이 포드(Ford)에 인수되면서 북미 자본 아래 운영되었고, 트럭·버스·건설장비 부문은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어 영업했다(볼보 그룹). 그러나 포드가 경제 위기로 인해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을 해체하기로 결정하면서, 볼보 승용차 부문(Volvo Cars)은 2010년 중국 지리자동차(Geely)에 매각되었다. 당시 “중국 기업이 스웨덴 명문 브랜드를 사들였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나, 지리는 볼보 경영에 대한 자율성을 상당 부분 보장했고, 오히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신차와 기술 개발을 지원함으로써 볼보가 새로운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볼보는 지리 인수 이후 혁신을 가속화했다. 2010년대 중반 출시된 XC90·S90·V90 등 모델에 새로운 SPA(Scalable Product Architecture) 플랫폼과 드라이브-E(Drive-E) 파워트레인(소형 터보·슈퍼차저 4기통 엔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을 적용해, 연비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노렸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대폭 개선되어 북유럽 특유의 미니멀리즘과 고급 소재 사용이 결합돼, “볼보 차가 예전엔 각지고 투박했지만, 이제는 우아하고 세련됐다”는 평을 받았다.

‘안전’이라는 핵심 가치도 더욱 강화됐다. 볼보는 “2020년 이후 볼보 차량에서 사망·중상을 없게 하겠다”는 ‘비전 2020’을 내세웠고, 시티 세이프티(City Safety) 같은 첨단 주행 보조 기능과 파일럿 어시스트(Pilot Assist), 반자율주행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2019년에는 시속 180km로 최고속도를 제한하는 획기적 조치를 발표해 “과속으로 인한 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행보는 자동차 안전의 리더로서 볼보가 가치를 지키려 한다는 상징이 됐다.

전동화 측면에서, 볼보는 2017년 “2019년 이후에 나오는 모든 모델에 전동 파워트레인을 적용하겠다”는 선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볼보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 등을 전 라인업에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XC40의 전기 버전 ‘XC40 리차지(Recharge)’를 출시했고, 쿠페형 전기 CUV인 C40 리차지를 선보였다. 장기적으로는 “2030년 이후 내연기관 모델 판매 중단”을 목표로, 완전 전동화 브랜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지리자동차와는 별도 합작 회사(폴스타Polestar)를 만들어 고성능 전기차를 개발하기도 하며, 리튬이온 배터리 공유와 소프트웨어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폴스타는 폴스타 1(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쿠페), 폴스타 2(순수 전기 패스트백), 폴스타 3(전기 SUV) 등을 출시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전문 서브 브랜드”로 자리 잡는 중이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볼보는 라이다(LiDAR) 기반 시스템과 “파일럿 어시스트 2.0” 같은 고급 ADAS 기능 도입을 예고하면서, “인공지능/자율주행 기술 역시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부 모델에서는 OTA(Over-The-Air) 업데이트로 소프트웨어 기능을 개선하며, 향후 레벨3 이상 자율주행 구현 시에도 “사고 사망자 제로”라는 핵심 가치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결국, 볼보는 1927년 창립 이후 ‘안전’과 ‘인체공학’, ‘북유럽 디자인’을 결합해 독자적 브랜드 가치를 쌓아 왔다. 한때 “각진 박스형 가족차” 이미지를 지녔으나, 중국 지리 인수 이후 SPA 플랫폼 기반 신모델로 디자인 혁신을 이루었고, 자율주행·전동화 시대로 전환하는 현재에도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충돌 안전 1위 브랜드’라는 오랜 명성과, 세계 최초 3점식 안전 벨트 발명으로부터 이어진 인본주의 철학이 “볼보 차는 타인의 생명까지 지키는 차”라는 이미지를 계속 확고히 하는 셈이다.

향후 과제는 전동화 경쟁이 격화되는 글로벌 시장에서 볼보가 어떻게 지속 가능성을 더욱 강화하느냐다. 이미 CO₂ 중립 등을 위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했으며, 마일드 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서 완전 전기차로 전환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특히 XC40 리차지, C40 리차지 등 소형 전기 SUV와 차세대 90 시리즈 전기화 모델이 주요 무기가 될 전망이다. 다만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 테슬라, 독일 3사, 중국 BYD 등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볼보의 ‘안전+북유럽 럭셔리’ 조합이 얼마나 차별성을 확보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또한 볼보가 속한 지리 그룹은 볼보·폴스타·링크앤코(Lynk & Co) 등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며, 배터리·소프트웨어·플랫폼을 공유하는 협업 구조를 구축하는 중이다. 볼보는 여기서 “글로벌 고급 브랜드”로 위상을 지키면서, 전 세계 시장(특히 유럽, 북미, 중국, 한국 등)에서 전동화 SUV와 세단을 판매하는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볼보는 1927년 스웨덴에서 태어나, 3점식 안전 벨트와 최첨단 충돌 안전 기술로 세계 자동차 안전 문화를 선도했고, 인체공학과 실용적 디자인의 결합으로 “패밀리카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현대에는 지리자동차 인수로 자본을 확보해, 전동화·자율주행 시대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으며, “안전을 이유로 속도 제한(시속 180km) 도입” 등 과감한 정책으로 자동차 안전문화 발전에 기여한다. 이러한 행보는 “사고 사망자 제로”라는 꿈에 한 발 다가서는 동시에, 프리미엄 전기 SUV·세단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려는 스칸디나비아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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