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사의 우아함, 애스턴마틴(Aston Martin)의 전설과 미래

애스턴마틴

(1) 라이오넬 마틴의 초기 도전과 브랜드 탄생 배경

영국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 애스턴마틴(Aston Martin)은 1913년 라이오넬 마틴(Lionel Martin)과 로버트 뱀포드(Robert Bamford)가 설립했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뱀포드 & 마틴(Bamford & Martin)’이라는 소규모 정비·판매 사업을 운영했는데, 그와 별개로 라이오넬 마틴은 영국 남부 ‘애스턴 클린턴(Aston Clinton)’ 언덕에서 열린 힐클라임 레이스에 자주 참가하며 레이스카 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애스턴마틴(Aston Martin)”이라는 이름은 이 언덕 레이스에서 비롯되었으며, 마틴이 언덕을 오르며 레이스를 펼친 경험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과 언덕 이름을 합쳐 탄생시킨 것이다. 초기에는 자금 부족과 1차 세계대전 발발 등으로 제대로 된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전쟁 후 회사를 재정비해 수작업으로 소량의 레이스카와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1920~30년대에도 재정난이 잦아 주인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정통 영국식 스포츠카”라는 명성은 조금씩 쌓여갔다. 당시는 벤틀리(Bentley), 래건(Lagonda), MG 등 영국 내 다양한 스포츠카·럭셔리카 브랜드가 경쟁하던 시기였고, 애스턴마틴은 소수 마니아를 중심으로 “우아한 스타일과 부드러운 엔진 감각”을 지향하는 입지를 구축하려 애썼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산 중단과 부품 부족 등으로 또다시 생존 위기에 놓였고, 전후에도 자금난이 이어져 완전한 재도약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가 수차례 주인이 바뀌면서도, 창립자 라이오넬 마틴이 남긴 “영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스포츠카를 만들겠다”는 포부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훗날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이라는 사업가가 회사를 인수해, 애스턴마틴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 토대를 닦는다. 이로써 애스턴마틴은 1950~60년대에 등장한 DB 시리즈를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2) 데이비드 브라운의 DB 시리즈와 007로 대표되는 이미지

애스턴마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47년 데이비드 브라운이 회사를 인수한 사건이다. 그는 트랙터 제조 등 기계 공업으로 성공을 거둔 사업가로, 애스턴마틴을 맡은 뒤 동시에 래건다(Lagonda)도 인수해 엔진 기술력을 흡수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애스턴마틴은 “DB 시리즈”라는 핵심 라인업을 출범시켰고, DB2(1950)부터 시작해 DB4, DB5, DB6 등이 잇달아 출시되었다.

특히 1958년에 공개된 DB4는 알루미늄 차체와 슈퍼레제라(Superleggera) 공법을 적용, 낮은 중량과 우아한 곡선미를 동시에 구현해 영국 럭셔리 스포츠카의 정점을 보여줬다. 직렬 6기통 엔진의 청아한 사운드와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결합해 “영국 신사의 차”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그 계보를 잇는 DB5(1963년 출시)는 애스턴마틴 역사상 가장 iconic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DB5의 대중적 인지도에 폭발적 상승을 가져다 준 결정적 계기는 바로 영화 ‘007 시리즈’다. 1964년작 ‘골드핑거(Goldfinger)’에서 제임스 본드(숀 코너리 분)가 애스턴마틴 DB5를 타고 각종 스파이 장비를 구사하며 악당과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전 세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007 시리즈 곳곳에서 애스턴마틴 차량이 등장해, 제임스 본드와 애스턴마틴은 사실상 ‘영국 신사의 시그니처 듀오’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애스턴마틴은 “영화 속 첨단 스파이 장치까지 탑재한 궁극의 세련미”를 상징하게 되었고, 미국 시장 등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처럼 DB 시리즈와 007 영화가 만나 형성된 “영국 신사 스포츠카”라는 이미지는 애스턴마틴의 브랜드 가치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후 DB6, DBS, V8 밴티지(V8 Vantage) 등으로 라인업이 확장되었지만, 재정난이 자주 찾아와 경영권이 바뀌거나 회생 과정을 반복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식 우아함과 고성능”이라는 애스턴마틴의 명성은 끊기지 않았다.

(3) 하이퍼카 발키리, DBX SUV, 그리고 전동화 시대의 애스턴마틴

21세기에 들어서 애스턴마틴은 또 다른 큰 변화를 맞이한다. 포드(Ford)에 인수되었다가 분리된 뒤, 쿠웨이트 투자자와 이탈리아 투자사, 그리고 뒤이어 메르세데스-AMG와의 기술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파워트레인·전자장비 부문에서 새 숨을 불어넣었다. 이렇듯 자본과 기술을 보완받아, 기존의 DB 시리즈를 계승하는 DB9, DB11, DBS 슈퍼레제라 등의 모델을 출시해 고급스럽고 강력한 GT(그랜드 투어러) 라인업을 유지함과 동시에, 밴티지(Vantage) 시리즈로 스포츠카 시장도 공략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하이퍼카 발키리(Valkyrie)’ 프로젝트다. 애스턴마틴은 레드불 레이싱과 협력해 포뮬러 원(F1) 수준의 공기역학과 경량화, 그리고 V12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결합한 “도로 주행 가능 슈퍼머신”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발키리는 탄소섬유 모노코크, 미친 수준의 다운포스, 그리고 극소량 생산으로 가격이 수십억 원을 훌쩍 넘는 초고가 모델이 될 예정이며, 자동차 마니아들은 이를 “F1 기술이 거의 그대로 이식된 로드카”라고 평가한다.

또한 애스턴마틴은 2019년 말, 회사 역사상 최초의 SUV DBX를 출시해 글로벌 럭셔리 SUV 시장에 뛰어들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가 기존의 슈퍼카 이미지를 깨고 SUV 모델로 성공한 사례처럼, 애스턴마틴도 “럭셔리+스포츠”를 SUV에 접목해, 판매량 확대와 수익 구조 개선을 기대했다. DBX는 AMG에서 공급받은 4.0리터 트윈터보 V8 엔진을 탑재해 550마력 가량의 출력과 뛰어난 핸들링을 자랑하며, 출시 직후부터 높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미래를 바라봤을 때, 애스턴마틴은 전동화(Electrification) 시대에도 “럭셔리 스포츠카”라는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메르세데스-AMG가 이미 하이브리드, 전기 파워트레인 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어, 이를 어느 정도 공유하거나 협업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애스턴마틴은 전기차 프로토타입인 ‘Rapide E’를 발표한 바 있으며, 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일부 모델에 적용하겠다는 계획도 언급했다.

물론 “영국 신사의 여유와 V12 엔진 사운드”가 애스턴마틴의 상징인 만큼,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전환했을 때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지구 환경 보호와 탄소중립이라는 대의에 부응하면서, 애스턴마틴이 세련된 디자인과 전동화된 퍼포먼스를 조화롭게 풀어낼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자율주행 시대가 본격화해도, 애스턴마틴은 “고성능 자동차는 운전자의 즐거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철학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애스턴마틴은 모터스포츠, 특히 포뮬러 원(F1)에도 다시 뛰어들었다. 2021년부터 기존 레이싱 포인트 팀을 인수하여 ‘애스턴마틴 F1 팀’으로 재탄생시켰고, AMR(애스턴마틴 레이싱) 부서를 통해 하이퍼카 프로젝트, 내구 레이스 참여 등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확고히 심어주고, 로드카에 기술 피드백을 반영해 “F1 기술이 살아 있는 영국 스포츠카”로 차별화하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애스턴마틴은 1913년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DB 시리즈와 007 시리즈 영화의 시너지를 통해 “영국 신사의 럭셔리 스포츠카”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 뒤 수많은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디자인, 고성능 엔진, 영국적인 장인 정신”을 지키려 애썼다. 21세기 현재는 하이퍼카 발키리, 첫 SUV DBX, 그리고 메르세데스-AMG와의 기술 협력 덕분에 한층 더 다이내믹한 라인업을 완성하고 있으며, 전동화와 자율주행 시대에도 자신만의 고급 스포츠카 철학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영국 신사의 차”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애스턴마틴은, 앞으로도 DB 시리즈나 밴티지, 혹은 완전히 새로운 EV 슈퍼카 등을 통해 고객에게 ‘상류층 스포츠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할 것이다. 007 시리즈가 보여줬던 품격과 역동성은 애스턴마틴이라는 브랜드가 살아 있는 이상 계속해서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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