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의 기술, 혼다(Honda)가 일궈온 도전과 미래

혼다

(1) 혼다 소이치로의 창업과 오토바이 혁신

혼다(Honda)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모터사이클·자동차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기업으로,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가 1948년에 설립했다. 혼다 소이치로는 1906년 일본 시즈오카(静岡)의 가난한 대장간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기계와 엔진에 관심이 많았다. 청소년 시절 자전거 수리점을 다니며 기초를 닦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폐허 상태에서 재건에 나서던 시기에 “엔진 기술을 통해 모두가 이동의 자유를 누리게 하겠다”는 포부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초창기 혼다는 오토바이(모터사이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일본인들에게 “값싸고 기동성이 좋은 이동수단”이 필요하다는 걸 정확히 꿰뚫어본 결과였다. 1949년경 혼다는 A형, B형 모터를 자전거에 장착해 소형 모터사이클을 만든 게 효시이고, 1950년대 들어 “드림(Dream) 시리즈”와 “슈퍼 큐브(Super Cub)”가 연이어 히트하며 오토바이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슈퍼 큐브는 연비와 내구성이 뛰어나고 조작이 쉬워, 일본 국내는 물론 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지로 수출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단일 모터사이클 모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혼다 소이치로는 “기술은 결국 사람을 편하게 하고 즐겁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오토바이 제조에 필요한 엔진과 차체를 자체 설계·개발했다. 특히 1950~60년대 들어 혼다는 경량 고성능 엔진, 간단한 변속기 구조 등을 끊임없이 개선하며 “아무나 쉽게 탈 수 있지만 성능은 뛰어난” 소형 오토바이를 만들어냈다. 또한 1959년에는 전 세계 오토바이 시장의 중심지였던 미국에 첫 해외 법인을 설립했고,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예: Isle of Man TT)에도 도전해 승승장구했다. 이 시기 오토바이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와 브랜딩 경험은 이후 혼다가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2) 시빅과 어코드, 그리고 모터스포츠를 통해 증명한 엔진 기술

혼다는 196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첫 승용차 모델로는 소형 경차 S600, N360 등을 선보였는데, 연료 효율과 합리적 가격, 가볍고 민첩한 주행 성능이 특징이었다. 1970년대 들어 오일 쇼크가 발생하자 전 세계적으로 소형차 수요가 폭증했고, 혼다는 이를 기회로 1972년 “시빅(Civic)”을 내놓아 전 세계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시빅은 콤팩트한 차체, 경제적인 연비, 내구성, 합리적 가격을 앞세워 북미·유럽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970년대 중반엔 “CVCC 엔진(Compound Vortex Controlled Combustion)”을 개발해, 오염물질 배출 규제(미국 머스키법 등)에도 부합하면서 연비와 출력의 균형을 잡았다. 이는 혼다가 “청정 엔진 기술”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1976년에 중형 세단 “어코드(Accord)”를 출시해, “중산층 가족을 위한 편안하고 경제적인 차”로 큰 인기를 끌었고, 북미 시장에서 도요타 캠리와 함께 중형 세단 시장을 양분할 정도로 성장했다.

모터스포츠 방면에서 혼다는 모토GP(오토바이 경주)와 함께 포뮬러 원(F1) 무대에도 도전했다. 1964년 F1에 처음 참여해 어려움을 겪었으나, 1980~90년대 맥라렌·윌리엄스 등 팀에 엔진을 공급해 여러 차례 월드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F1 엔진의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맥라렌-혼다 시절 아일톤 세나(Ayrton Senna),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 등이 거둔 연승 기록은 지금도 팬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다. 최근 F1에서 레드불 레이싱에 엔진 공급 형태로 복귀한 혼다는, 2021년 막스 페르스타펜(Max Verstappen)의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을 함께하며 다시 한 번 “혼다 엔진 기술의 위대함”을 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