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닷선(Datsun)에서 닛산으로, 세계 시장 진출의 서막
닛산(Nissan)은 도요타(Toyota), 혼다(Honda)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로, 여러 차례의 합병과 회사명 변경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그 시작은 1910년대 일본 요코하마(Yokohama)에서 소형 자동차 생산을 추진하던 ‘카이신샤(快進社)’와, 주식회사 지츠요자동차(実用自動車)가 합쳐진 흐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만들어진 닷선(Datsun) 브랜드는, 당시에 소형차와 트럭을 제조해 일본 내수와 일부 해외 시장에 판매하던 회사였다.
“닷선(Datsun)”은 1930년대부터 일본 국내 소형차 수요를 견인했고, 1933년에 “주식회사 닛산자동차제조(社)”가 공식 출범하며 회사 명칭이 점차 닛산(Nissan)으로 통일되어 갔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군용 차량 생산에 동원되었으나, 전쟁 종료 후 일본 경제가 부흥하면서 닛산도 서서히 민수용 자동차 생산을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소형 트럭, 승용차 등에 주력하여, 일본 국내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과 안정된 품질”을 제공하는 자동차 회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50~60년대에는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을 본격 추진했다. 소형차 “닷선 블루버드(Bluebird)” 시리즈가 수출 효자 역할을 했으며, “섀시 견고함, 뛰어난 연비, 간단한 정비”라는 장점을 바탕으로 북미 소비자들에게 천천히 스며들었다. 이 시기 일본이 ‘수출 주도’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함에 따라, 닛산은 정부의 지원과 자체 기술 혁신으로 점차 해외 공략을 확대할 수 있었다. 1969년 출시된 ‘페어레이디 Z(Fairlady Z, 북미명 닷선 240Z)’는 가성비 좋은 스포츠카로 큰 화제를 모으면서, 닛산이 글로벌 업체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2) 스카이라인 GT-R, 그리고 전동화 시대를 향한 기술적 도전
닛산이 “고성능 자동차”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스카이라인(Skyline) 시리즈, 그중에서도 GT-R 모델이다. 원래 스카이라인은 1950년대에 존재하던 ‘프린스(Prince) 자동차’의 세단이었으나, 1960년대에 닛산과 합병된 후 닛산 스카이라인으로 재탄생했다. 1969년 C10 스카이라인에 “GT-R” 트림을 붙이면서, 2.0리터 직렬 6기통 DOHC 엔진, 후륜구동, 경량 차체를 갖춘 당시 기준으로는 파격적 성능의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R32, R33, R34를 거치는 동안, 스카이라인 GT-R은 AWD(4륜구동)와 터보차저를 결합해 일본 ‘JDM(일본 내수용 차) 고성능’의 상징이 된다. 특히 R32는 그룹 A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연전연승을 기록해 “갓질라(Godzilla)”라는 별칭을 얻었고, 1990년대 해외 튜너들과 레이싱 게임(예: 그란투리스모)을 통해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의 선망 대상이 되었다. R35 세대(2007년~)에서는 ‘GT-R’이라는 독립 모델로 발전, 3.8리터 트윈터보 V6 AWD 시스템 등을 갖춰 슈퍼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는 “닛산도 슈퍼카 시장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입증한 사례다.
물론 닛산은 고성능 자동차만 만들진 않는다. 알티마(Altima), 센트라(Sentra), 맥시마(Maxima) 등 중형·준중형 세단, 로그(Rogue), 캐시카이(Qashqai), 엑스트레일(X-Trail) 등의 SUV를 다채롭게 생산하며, 미국·유럽 시장에서 일본 메이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혼다·토요타에 밀리지 않는 가성비와 디자인, 비교적 과감한 기술 도입이 닛산의 특징으로 꼽힌다.
21세기 들어 전동화 흐름이 급속도로 가속화되자, 닛산은 **리프(LEAF)**라는 순수 전기차를 2010년에 발표하며 “대중형 전기차 시대”를 개척했다. 리프는 출시 초기부터 합리적 가격과 준수한 주행거리, 그리고 일본 특유의 내구성을 갖춰, 전 세계 전기차 누적 판매량 1위를 한동안 지키기도 했다. 덕분에 닛산은 ‘조기에 전동화 시장에 뛰어들어 선점 효과를 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경쟁사들이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테슬라 등 신생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자, 닛산도 하이브리드 시스템(e-Power)와 신형 전기 SUV(아리아Ariya) 등 추가 전동화 제품을 내놓으며 대응하는 중이다.
(3) 르노·미쓰비시 얼라이언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고군분투
1999년, 프랑스 르노(Renault) 그룹이 경영 위기에 처한 닛산을 인수·합작하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출범했다. 이후 미쓰비시(Mitsubishi)도 합류해,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는 전 세계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하는 매머드급 자동차 그룹이 되었다. 플랫폼과 부품, 전동화 기술, 자율주행 연구를 공유함으로써 대량생산 규모의 이점을 누리고, 각 브랜드가 해당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닛산은 이를 통해 르노의 디젤·소형차 플랫폼, 미쓰비시의 4WD·PHEV 기술 등을 흡수해 라인업 다양화에 나섰다.
한편, 얼라이언스 내부의 경영 갈등,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전 회장의 체포·도주 등으로 인해 르노-닛산 관계가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양사는 전동화·자율주행 등 미래차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드는 현실을 직시하고, 얼라이언스를 유지하며 공동 플랫폼 개발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닛산은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거대 시장에서 다양한 세그먼트를 커버해야 하므로, 그룹 내부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닛산은 “스카이라인 GT-R” 같은 고성능 이미지를 지키는 동시에, 대중차(알티마·센트라·로그·캐시카이 등)와 상용차(픽업·NV 밴) 등 폭넓은 제품군을 제공해왔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판매량 정체와 수익성 악화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전동화 시대로 가는 전환기 비용을 마련하려면, 내연기관 라인업에서 최대한 효율을 높이고 일부 지역 시장에서 철수 또는 축소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닛산은 유럽 세단 시장을 축소하고, 북미·중국·일본 등 핵심 시장에 자원을 집중하며, 전동화(e-Power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 리프·아리아 등)를 강화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아리아(Ariya)”는 2020년대 닛산이 선보인 전기 SUV로, 300~400km 내외의 주행거리와 세련된 내외관 디자인, 고급사양을 갖추어 테슬라 모델 Y, 폭스바겐 ID.4 등과 경쟁한다. 닛산은 아리아를 통해 리프에 이어 전기차 라인업을 확장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향후에도 SUV·크로스오버 중심의 전기 모델을 추가할 예정이다. 하이브리드(e-Power) 시스템은 별도의 충전 없이 엔진을 발전기처럼 사용해 전기 모터로 구동하는 독특한 형식이라, “엔진은 발전용, 바퀴는 전기모터 구동”이라는 차별점을 내세운다.
자율주행 부문에서도 프로파일럿(ProPILOT)이라는 반자율주행 기능을 중형 세단이나 SUV에 적용해, 차간 거리 유지와 차로 유지, 차선 변경 지원 등을 제공한다. 르노와의 얼라이언스 공동 개발을 통해 레벨 3 이상의 자율주행을 시도하는 중이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과 치열해지는 신생 기업들과의 경쟁이 변수다.
결국 닛산의 역사는 “소형차와 스포츠카로 일본 내부를 석권한 뒤, 해외 시장에 적극 진출해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한 스토리”라 할 수 있다. 페어레이디 Z, 스카이라인 GT-R 같은 전설적 스포츠카부터 알티마·센트라·로그 같은 대중차 라인업, 그리고 전기차 리프로 대표되는 전동화 선도 경험까지 폭넓은 서사가 펼쳐져 있다. 다만 토요타·혼다 대비 경영 안정성이 취약하다는 평가도 있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내부의 협업 및 갈등 이슈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가 향후 닛산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닛산이 전동화 시장에서 리프와 아리아 외에도 다양한 전기·하이브리드 모델을 빠르게 도입하고, 전기차 성능과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부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갓질라(Godzilla)”라 불리며 슈퍼카와 맞붙었던 GT-R 전통을 전기 슈퍼카로 이어받을지, 아니면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형태로 고성능 팬들을 만족시킬지, 일본 자동차 마니아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자율주행·커넥티드카 분야 역시, 기존 얼라이언스 자원과 닛산의 독자 연구가 결합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만약 닛산이 “퍼포먼스와 친환경을 동시에 갖춘 라인업”을 제대로 구축한다면, 도요타·혼다와 치열하게 경쟁해도 다시금 일본 내수 2위 혹은 세계 시장에서 상위권을 회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닛산은 “작고 강한 소형차 닷선”에서 출발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GT-R 퍼포먼스”와 “전기차 리프로 전동화 시대를 앞서 간 기업”이라는 다면적 이미지를 지닌 거대 메이커다. 1930–70년대 미국 수출, 1990년대 GT-R 황금기, 2010년대 리프로 이어지는 혁신의 흐름은 닛산 역사의 큰 줄기다. 향후에도 르노·미쓰비시 얼라이언스와 협력을 강화해 전동화·자율주행·커넥티드 분야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면, “가성비와 퍼포먼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본 메이커”로 재도약할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