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적 기발함과 혁신, 시트로앵(Citroën)의 역사와 미래

스티로엥

(1) 앙드레 시트로앵의 대담한 아이디어, 전륜구동의 대중화

시트로앵(Citroën)은 1919년 앙드레 시트로앵(André Citroën)이 파리에서 설립한 자동차 회사로, 프랑스 자동차 산업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앙드레 시트로앵은 유대계 프랑스인으로, 금속 기어 제조 사업을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수 물자를 생산했고, 전쟁 직후 “프랑스가 재건되려면 실용적이고 혁신적인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본격적으로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었다.

1919년 첫 생산 모델로 유명한 시트로앵 Type A는 대량생산 공정을 적용해 가격을 낮추고,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구조로 설계되어 “프랑스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로 꼽힌다. 이는 앙드레 시트로앵이 미국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방식을 벤치마킹해 유럽에 도입한 결과였다. 동시에 그는 마케팅에도 적극적이었다. 예컨대 에펠탑 전체를 시트로앵 로고 조명으로 뒤덮는 파격 프로모션을 펼치거나, 그랜드 크로싱 이벤트를 통해 신차 홍보에 나서는 등, “유럽 자동차 홍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트로앵이 본격적으로 혁신 DNA를 드러낸 것은 1934년 발매된 ‘트락숑 아방(Traction Avant)’에서다. 당시 자동차들은 대개 후륜구동(Front Engine, Rear-Wheel Drive)이었는데, 시트로앵은 ‘전륜구동(Front-Wheel Drive)’ 방식을 대량생산 모델에 적용해버렸다. 게다가 트락숑 아방은 모노코크 차체와 독립식 서스펜션을 접목해 “유럽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적용한 양산차”로 불렸다. 이러한 대담한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앙드레 시트로앵이 “기술적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락숑 아방 개발 비용이 막대해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결국 1935년 미슐랭(Michelin)이 시트로앵을 인수해 경영을 재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륜구동’이라는 파격적 선택은 자동차 산업 전반에 충격파를 던졌고, 이후 유럽 자동차들의 구동 배치를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2) DS와 2CV, 편안함과 실험정신을 극대화하다

시트로앵의 독창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모델로는 1955년 출시된 ‘DS(디에스)’가 있다. DS는 곡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체 디자인, 반유체식 하이드로뉴매틱(Hydropneumatic) 서스펜션, 가변 차고 조절 기능 등 “당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기술을 한꺼번에 적용해 “프랑스의 우아함과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DS의 유려한 곡선 실루엣과 매끈한 공기역학 설계는, 자동차가 단순 교통수단이 아니라 예술적 오브젝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으로 차고 높이를 자동으로 조정해 노면 상태에 따라 항상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한다는 점이 혁신이었으며, 이로 인해 DS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DS 외에도 시트로앵은 “2CV(Deux Chevaux)”라는 서민형 소형차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48년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된 2CV는 “농부가 달걀 바구니를 싣고 험로를 달려도 깨지지 않게 할 것”이라는 개발 목표 아래 만들어진, 극도로 단순화된 경량 소형차였다. 2기통 공랭식 엔진, 스프링과 댐퍼를 최소화한 토션바 서스펜션 등으로 유지비와 연비가 뛰어났고, 농촌·도심 할 것 없이 프랑스 전역에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차’라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2CV는 1990년까지 500만 대 이상 생산되며, 독일의 폭스바겐 비틀, 이탈리아의 피아트 500 등과 함께 유럽 서민차 붐을 대표하는 역사적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시트로앵은 전륜구동,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 그리고 극단적 단순화 설계를 내세워, 프랑스 자동차산업에서 “기발함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브랜드”로서 명성을 굳혔다. 다만 과감한 혁신은 언제나 재정적 부담과 위험을 동반했고, 여러 차례 경영 위기를 겪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976년, 시트로앵은 푸조(Peugeot) 그룹에 합류해 PSA(푸조-시트로앵) 그룹을 형성했다. 이후 푸조와 플랫폼·엔진을 공유하면서 모델 간 중복 투자를 줄이고, 합리적 가격대를 유지하는 모델들이 속속 출시됐다. 그러나 시트로앵은 여전히 “프랑스식 유쾌함과 신기술”을 녹여낸 독창적 모델(예: BX, XM, Xantia, C5 등)을 내놓으며, 오랜 혁신 유전을 이어갔다.

(3) 스텔란티스 체제의 시트로앵, Advanced Comfort와 전동화 전략

21세기에 들어, PSA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전동화 기조에 따라 푸조·시트로앵·오펠·DS Automobiles 등을 산하에 두고 다양한 플랫폼을 공유하는 전략을 펼쳤다. 시트로앵은 소형차 C3, 패밀리카 C4, MPV·크로스오버 C4 피카소 등으로 유럽 시장을 커버하며, “편안함과 독특한 디자인”이라는 전통을 재해석하려 했다. 특히 2014년 출시된 C4 칵투스(C4 Cactus)는 ‘에어범프(Airbump)’라는 고무 패드를 차체 측면에 달아 문콕이나 경미한 접촉사고로부터 차량을 보호하는 아이디어를 적용해 화제를 모았다.

시트로앵은 “Advanced Comfort”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승객이 느끼는 승차감과 실내 환경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의 명맥을 잇는 프로그레시브 하이드롤릭 쿠션(Progressive Hydraulic Cushions) 시스템을 통해 노면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고, 광활한 실내 공간과 인체공학적 시트 설계를 결합해 도심 운전의 피로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소형차부터 SUV까지 다양한 세그먼트에서 이 철학을 적용해, “시트로앵 차는 탑승자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인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2021년, PSA는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합병해 스텔란티스(Stellantis)라는 거대 자동차 그룹이 탄생했다. 시트로앵은 이제 스텔란티스 체제 내에서, 프랑스·유럽·남미 등 주요 시장을 주 무대로 삼는 볼륨 브랜드(Volume Brand)로 포지셔닝되고 있다. 전동화 측면에서 시트로앵은 이미 소형 전기차 AMI, C4 일렉트릭, e-C4, 하이브리드 C5 에어크로스 등 모델을 출시해 “도시 중심의 전동화 라인업”을 키우고 있다. 또한 스텔란티스가 개발 중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STLA 계열)을 활용해, 향후 2030년께까지 시트로앵 전체 모델의 상당 부분을 전동화할 계획이다.

디자인 역시 여전히 ‘프랑스적 기발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외관 디자인에서 2D형 로고와 곡선적 차체, 유니크한 조명 배치를 적용하거나, 실내에서 단순히 많은 버튼을 배치하기보다는 터치스크린·음성제어·수납 공간 최적화 등을 통해 ‘깔끔하고 재밌는’ 사용자 경험을 추구하는 식이다. 시트로앵은 과거부터 광고·마케팅에 있어서도 과감했는데, “고객에게 편안함과 색다른 즐거움”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자주 전개한다.

미래 모빌리티 관점에서 시트로앵은 “도심형 전동화 차”와 “자율주행 교통”에 맞춰 공공 차량·공유 모빌리티용 컨셉트카를 선보이고 있다. 예컨대 콘셉트 모델인 19_19나 AMI 원, 스페이스투어러 일렉트릭 등에서 시트로앵 특유의 소파 같은 시트, 파노라믹 루프, 에어범프 및 획기적 서스펜션 등을 구비해 도시 이동의 편안함을 극대화한다는 철학을 보였다. 향후 자율주행이 일반화되면, 시트로앵은 “이동 중에 휴식이나 업무를 볼 수 있는, 거실 같은 자동차”를 만들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면, 시트로앵의 역사는 곧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프랑스 자동차 회사”라고 요약될 수 있다. 전륜구동 대중화, DS의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 2CV의 극단적 단순화, 에어범프, Advanced Comfort 서스펜션 등은 그동안 시트로앵이 선보인 대담한 실험의 결과들이다. 물론 이런 급진적 시도는 재정적 위기와 잦은 인수·합병 등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세계 자동차 문화에 새로운 자극을 줬다는 점에서 시트로앵의 공헌은 무시하기 어렵다.

앞으로 시트로앵은 스텔란티스 그룹 안에서 푸조·오펠·피아트 등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도심형 크로스오버·MPV·해치백’ 분야의 전문 브랜드로 역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전동화 시대에 “시트로앵이 ‘편안함과 독창적 디자인’을 어떻게 융합할지”가 계속 주목되는 이유다. 특히 현대인이 추구하는 ‘소프트 모빌리티(Soft Mobility)’와 ‘스트레스 없는 이동’ 트렌드가 시트로앵의 Advanced Comfort 철학과 맞물려, 경쟁사와 차별화된 매력을 발산할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많다.

결론적으로, 앙드레 시트로앵이 시작한 “기발한 도전정신”은 지금까지 시트로앵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 있다. 전륜구동 대중화, DS를 통한 예술적 기술 혁신, 2CV로 대표되는 서민용 소형차, 그리고 에어범프·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에 이르기까지, 시트로앵은 늘 “프랑스식 창의성”과 “대중 친화적 혁신”을 결합해왔다. 전동화·자율주행 시대에도, “편안함, 독창적 감각, 도시 생활에 맞는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며, 이는 시트로앵 브랜드가 앞으로도 독특한 위치를 유지할 근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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