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이 르노가 탄생시킨 프랑스 국민차 브랜드
르노(Renault)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로, 그 뿌리는 1898년 루이 르노(Louis Renault)가 형제들과 함께 설립한 “르노 형제사(Société Renault Frère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루이 르노는 독학으로 기계공학을 익힌 천재 엔지니어로, 1898년 12월경 자택 차고에서 직접 자동차를 조립했고, 이것이 훗날 “르노 타입 A(Type A)”라는 브랜드 최초 모델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의 자동차 시장은 유럽 각국에서 여러 발명가가 작은 공방을 운영하던 시기였으나, 르노는 ‘실용성’과 ‘기술 혁신’을 동시에 잡아 빠르게 성장한다.
르노가 창립 초기부터 집중한 영역은 도시형 소형차와 택시 사업이었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마차 기반 교통에서 내연기관 차량으로 전환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고, 르노는 ‘작고 유지비가 저렴하며 신뢰도 높은 택시용 자동차’를 공급해 이를 계기로 수익과 명성을 쌓아 올렸다. 1905년 파리의 르노 택시는 곧 “파리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택시 사업이 발전하면서 르노도 확고한 재정 기반을 마련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군용 트럭, 탱크 등 전쟁 물자를 대거 생산해 프랑스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전후(戰後)에는 경제 침체와 공장 재건 과정을 거치면서도 소형·중형 자동차를 생산, 서민층부터 중산층까지 아우르는 라인업을 구축했다. 따라서 르노는 “프랑스 국민에게 자동차를 공급하는” 대중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무거운 상용차, 버스, 트럭, 심지어 항공기 엔진 분야까지 손을 뻗치며 종합 운송기계 메이커로서 위상을 높였다.
1920~1930년대 르노는 경쟁사인 푸조(Peugeot), 시트로앵(Citroën) 등과 함께 프랑스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다. 회사 창업자인 루이 르노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정이 뛰어났고, 엔진 설계·기어박스·차체 제조 방식에서 여러 특허를 취득해 르노의 경쟁력을 높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고, 르노 공장도 독일군에 접수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전후에는 국유화와 민영화 과정을 오가면서 파란만장한 운명을 맞이한다.
(2) 르노 4·5, 에스파스, 그리고 터보 엔진으로 빛난 F1 무대
전쟁이 끝나고 19501960년대 들어 프랑스 경제가 회복되자, 르노는 대중 친화적 모델을 잇달아 출시하며 “실용성과 혁신”을 양립시키는 노선을 강화했다. 그중 대표적으로 꼽히는 모델이 ‘르노 4’와 ‘르노 5’다. 르노 4(1961년 출시)는 프랑스 최초의 대량생산 5도어 해치백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넓은 적재공간, 전륜구동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1,000만 대 이상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소형차 르노 5(1972년)는 경쾌한 디자인과 경제성을 무기로,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198090년대를 거치며 여러 세대 진화를 통해 프랑스 국민이 사랑하는 ‘르노표 해치백’의 전형을 완성했다.
MPV(다목적 차량)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도 르노의 공이었다. 1984년에 등장한 르노 에스파스(Espace)는 승용차와 미니버스의 중간 개념인 MPV로, 유럽 가족단위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공간 활용도와 승차감을 제시했다. 당대에는 “과연 이런 ‘박스 형태의 장난감’ 같은 차가 팔릴까?”라는 회의도 있었지만, 에스파스는 대히트로 이어져 르노에게 ‘혁신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더해 주었다. 이후 시나리오에서 르노는 캉구(Kangoo)나 세닉(Scénic) 같은 다양한 MPV·크로스오버 모델도 내놓아, 유럽 패밀리카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르노의 열정은 모터스포츠, 특히 포뮬러 원(F1)에서도 폭발했다. 1977년 르노는 포뮬러 원에 터보 엔진을 최초로 도입하여 “터보 시대”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터보차저를 레이스카에 적용하는 건 기술적 불확실성이 크고 내구성 문제도 있기에 모험이라는 시선이 강했다. 그러나 르노는 터보 엔진을 활용해 높은 출력과 회전수를 확보해,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F1 무대를 강타했다.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 등 슈퍼스타가 르노 엔진을 사용한 팀에서 활약하여 드라이버·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다수 차지했다.
이후 르노는 직접 F1 팀을 운영하거나, 엔진 공급사로서 윌리엄스, 베네통, 레드불 등 유수의 팀과 협력해 성적을 올렸다. 1990년대 윌리엄스-르노, 2000년대 중후반 르노F1 팀(페르난도 알론소의 챔피언십) 등이 대표적 성과다. “F1에서 검증된 터보 엔진 기술을 양산차에 접목한다”는 전략은 르노 5 터보, 클리오 V6, 메간 R.S. 같은 고성능 모델로 이어졌고, 대중차에서도 “프랑스 브랜드지만 스포츠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3)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와 전동화 시대, 르노의 미래
르노는 1990년대 말부터 국제화와 합병, 제휴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했다. 1999년 닛산(Nissan)과의 얼라이언스를 통해 자본과 기술을 교류하고, 2016년에는 미쓰비시(Mitsubishi)까지 합류하면서 “르노-닛산-미쓰비시”라는 세계 3~4위권에 오르는 대형 자동차 그룹이 탄생했다. 이를 통해 르노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 남미, 러시아 등까지 시장 범위를 넓혔고, 공동 플랫폼과 부품 공유로 비용 효율을 높였다. 특히 닛산이 유리한 SUV·크로스오버 라인업과 미쓰비시의 4WD·오프로더 기술이 더해져, 르노도 다양한 세그먼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가장 큰 변화는 전동화(Electrification) 흐름이다. 르노는 전기차 분야에서 비교적 일찍 투자하여, 2012년 소형 전기 해치백 조에(ZOE)를 출시했다. 조에는 도시형 전기차로 유럽 시장에서 꾸준히 판매량 상위권을 지키며, “합리적인 가격대의 EV”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후 캡쳐(Captur), 메간(Mégane) 등에도 하이브리드 혹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도입해, 환경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는 유럽 시장을 대비하고 있다.
르노가 주목하는 영역은 단순히 전동화만이 아니다. 도시형 모빌리티, 카셰어링, 자율주행 등 미래 교통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예컨대 얼라이언스 파트너와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전기 플랫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기반의 차내 시스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운전자 보조 기술 등을 속속 도입하면서, “프랑스 실용차는 무조건 값싸고 단순하다”는 옛 이미지를 혁신하려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면에서는, 르노가 쌓아온 “혁신과 대중성”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MPV 시초인 에스파스에 이어, 크로스오버와 SUV 시장에서 캡쳐, 카자르(Kadjar), 콜레오스(Koleos) 등을 내놓았고, 전동화 모델인 조에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프랑스 내 전기차 점유율을 높였다. 모터스포츠 부문도 포뮬러 원에 엔진 공급 형태로 계속 참여해 기술력을 검증하고 있으며, 르노 스포츠(Renault Sport) 산하에서 메간 R.S., 알핀(Alpine) 브랜드 등 퍼포먼스 라인업을 전개하기도 한다.
또한 르노는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감성적 곡선과 심플함”을 내세운 새로운 스타일링 언어를 구축했다. 2010년대부터 르노의 디자인 총괄로 있었던 로렌스 반덴 애커(Laurens van den Acker)가 주도한 방향성으로, ‘생명주기(Life Cycle)’라는 콘셉트 아래 차량 전면부의 커다란 르노 로장주(마름모) 로고와 날렵한 헤드라이트, 풍부한 곡선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소형차 클리오(Clio), 캡쳐에서 시작해 르노 전체 라인업에 확산되었고, 이후 전기차와 SUV 모델에도 동일한 패밀리룩을 적용함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통일성 있게 만들었다.
미래를 내다봤을 때, 르노는 “유럽 도시에서 쉽게 탈 수 있는 친환경·실용차”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며,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려 한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차세대 플랫폼을 활용하면, 연구개발 비용을 절감하고 폭넓은 시장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차량 공유나 로보택시 등에도 르노의 소형차 노하우가 발휘될 수 있다는 평가다.
결국 르노의 역사는 “실용성·대중성”을 기반으로 프랑스 자동차 시장을 선도해 온 스토리이며, 동시에 모터스포츠에서 터보 엔진 기술을 혁신해 F1 무대를 뒤흔드는 “기술 선도자”의 모습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르노 4나 5, 에스파스처럼 획기적 라인업을 과감히 출시해 시장 트렌드를 창조하는 면모 또한 강하다.
앞으로도 르노는 “프랑스 국민차”라는 전통을 이어받아, 중소형 해치백이나 크로스오버, 전기차 부문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얼라이언스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미 역동적인 모터스포츠 참여 이력을 갖고 있어, 전동화 레이스나 e-스포츠 부분에서도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브랜드다. 과거 “르노 택시가 파리 거리를 가득 메웠다”는 식의 역사가 미래에도 “르노 전기차가 유럽 도심을 누빈다”라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계승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르노는 “프랑스 자동차의 대명사”이자, 대중성과 혁신성을 모두 가진 브랜드로 성장해 왔다. 전쟁과 국유화, 그리고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도 실용적 모델과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공을 접목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전과 변화를 택했다. 지금은 닛산·미쓰비시와의 얼라이언스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적응 중이며, 전기차·자율주행·커넥티드카 분야에서 프랑스식 상상력과 기술력을 결합해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 브랜드”를 넘어서, 글로벌 무대에서도 매력적인 대중차와 모터스포츠 정신을 이어가는 르노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