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동환 자동차 공업사에서 쌍용차로, 군용차 기반의 출발
쌍용자동차(SsangYong Motor)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UV 전문 브랜드 중 하나로, 1950년대 초 하동환(河東煥)이라는 기업가가 “하동환 자동차 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것이 뿌리가 된다. 초창기에는 버스·트럭 등 상용차와 군용차 개조 작업을 수행하며 기반을 다졌고,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면서 한국 교통·물류 분야에 기여했다. 그러나 기업 규모가 작고, 승용차 개발 노하우가 부족했던 터라, 1980년대 중반까지 자체 브랜드 승용차를 내놓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1986년에 쌍용그룹에 인수되면서 회사 명칭도 “쌍용자동차”로 변경되고, 다양한 투자와 기술 제휴를 모색하게 된다. 당시 한국은 현대·기아·대우 등 이미 몇몇 대형 자동차 회사가 내수 시장을 장악해 가던 시기였다. 쌍용자동차는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SUV와 4WD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그 결과 독일 다임러-벤츠(Daimler-Benz, 메르세데스-벤츠 모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뛰어난 디젤 엔진 및 트랜스미션 기술을 도입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쌍용차가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SUV”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첫발을 내딛는다.
1980~90년대 한국 자동차 시장은 세단 위주의 시장으로, SUV 수요가 아직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레저 인구가 늘고, 오프로더·SUV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쌍용자동차가 출시한 무쏘(Musso)·코란도(Korando) 등 모델이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이는 쌍용이 “SUV 전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 경영 위기와 구조조정 국면이 반복되면서 쌍용차는 여러 차례 인수·합병과 법정관리를 거치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기도 했다.
(2) 무쏘·코란도·렉스턴, 그리고 SUV 전문 브랜드 도약
쌍용차가 국내외에 이름을 알린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모델은 무쏘(Musso)다. 1993년 출시된 무쏘는 독일 벤츠 디젤 엔진을 탑재해 “한국산 SUV도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당시 4WD 오프로더가 주로 투박하고 실용적인 이미지였다면, 무쏘는 세련된 디자인과 비교적 안락한 승차감을 앞세워 중산층 이상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차체가 크고 엔진 출력이 높아, 가족 단위 레저용으로도 각광받았으며, 해외 수출로도 일정 성과를 냈다.
무쏘와 함께 **코란도(Korando)**라는 모델도 쌍용차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란도는 원래 신진지프 시절부터 존재하던 군용 지프형 차량을 개량해, 1980년대 쌍용이 인수·개발하면서 본격 양산에 들어간 4WD 오프로더다. 특히 1990년대 말 출시된 뉴 코란도(“JEEP형”으로 불리던 3도어, 5도어 모델)는 “강인한 외관, 터프한 브랜드 이미지, 합리적 가격”을 갖춰 오프로더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심지어 튜닝 문화가 발전하면서 코란도는 디젤 엔진 개조, 서스펜션 업그레이드 등 다양한 형태로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초에는 **렉스턴(Rexton)**이라는 대형 SUV를 출시해 “프리미엄 SUV” 라인업을 강화했다. 벤츠 기술이 적용된 직렬 5기통, 6기통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오토 변속기, 멀티링크 서스펜션 등 고급 사양을 채택해 쌍용차의 이미지 상승에 기여했다. 렉스턴은 중동, 러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한국산 프리미엄 SUV”로 인식되어 수출에 일조했다. 이어서 코란도 밴, 코란도 스포츠(픽업트럭 형태), 액티언(Actyon)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했으며, 2010년대 들어서는 코란도 C, 티볼리(Tivoli) 등 현대적인 크로스오버 SUV로 경쟁력을 이어갔다.
쌍용차가 ‘SUV 전문 브랜드’라는 인식을 국내외 시장에 꽂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랜 4WD 차량 개발 경험과 벤츠 기술 제휴가 있었다. 게다가 국내에서 세단 위주의 현대·기아와 차별화된 SUV 라인업으로 틈새 시장을 파고든 점이 주효했다. 하지만 IME(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그리고 잦은 인수·합병 과정에서 연구개발 투자 한계와 마케팅 부문이 다소 미흡하여, 현대·기아처럼 글로벌 톱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엔 어려움을 겪었다.
(3) 경영 위기, 전기 시대와 글로벌 재도전, KG 모빌리티로의 변신
쌍용차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대우그룹에 인수되었다가, 대우그룹 해체로 인해 다시 경영 위기를 맞았고, 2004년 상하이자동차(Shanghai Automotive) 산하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상하이차의 기술 유출 논란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2009년 법정관리로 들어갔고, 이 시기 노사 갈등과 공장 점거 사태 등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2010년 마힌드라(Mahindra & Mahindra, 인도 기업)의 투자를 받아 회생을 노렸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시 재정난이 심화되어 2020년 말 회생절차(법정관리)를 또다시 진행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용차는 이 시기에도 티볼리(SUV), 코란도 이모션(전기 SUV) 등 신차를 발표하며 “SUV 전문 기업”으로서 명맥을 이어왔다. 특히 2015년 티볼리는 젊은 감각의 소형 SUV로 내수 시장에서 성공해, 쌍용차가 다시 한번 회생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후 렉스턴 스포츠(픽업) 등 다양한 변형 모델을 잇달아 선보이며, 북미 시장 진출도 타진했으나,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적극적인 글로벌 확장은 쉽지 않았다.
결국 2022년 인수·합병 절차를 통해 KG그룹(철강·화학·물류 분야 사업을 영위하는 중견 기업)이 쌍용자동차 경영권을 확보했다. 새 지배 구조 아래에서 쌍용차는 **“KG 모빌리티(KG Mobility)”**라는 새로운 사명(社名)으로 변경하고, 전동화 시대에 맞춘 SUV·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2023년). 기존 코란도 이모션, 토레스(EV 등 차세대 전기 모델) 등의 프로젝트를 강화하고, 배터리 기술과 플랫폼을 효율적으로 확보해 “경쟁력 있는 전기 SUV 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KG 모빌리티(옛 쌍용차)는 이로써 “SUV 전문 브랜드”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되, 전기 파워트레인과 자율주행·커넥티드카 기술을 적극 도입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경영진은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에, 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시장을 넘어 유럽, 중동, 중남미 등 수출 시장을 다시 공략해 “전기 SUV 전문기업”으로 자리 잡겠다는 전략이 거론된다.
한편, 노사 관계와 품질 관리, 그리고 연구개발에 필요한 투자 확보가 장기적인 성공 여부를 좌우할 관건으로 지목된다. 현재 현대·기아가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고, 테슬라를 비롯한 신흥 전기차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쌍용차(또는 KG 모빌리티)가 기술적·상업적 차별화를 이루려면 상당한 자본과 마케팅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무쏘·코란도·렉스턴으로 쌓은 SUV 노하우와 소비자 인지도는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결국, 쌍용차(현 KG 모빌리티)는 “국내 SUV 원조 브랜드”라는 자부심과 수차례 위기를 이겨낸 끈기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재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 무쏘·코란도 시절의 투박하지만 강한 개성이 시대 흐름에 맞춰 전동화·디지털화로 변모한다면, 오랜 애정을 갖고 지켜봐 온 국내외 팬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줄 수도 있겠다. “벤츠 디젤 엔진으로 시작해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진화한다”는 도전은 분명 쉽지 않겠지만, 쌍용차가 그동안 보여준 끈기와 변화 의지를 떠올리면, 미래에도 SUV 전문 브랜드로 살아남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다.